글 · 사진 | 세발이, sebari
예전에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 몰랐고, 남들이 욕망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드러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안 해본 게 너무나도 많은데 아주 작은 경험만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라 애초에 선을 그을 수 없다.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몇 년 전, 나는 석사 학위를 땄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과 학위를 딴다는 것은 조금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우리의 삶에서 나이를 먹고, 학위를 받는, 그 두 가지의 일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학위 과정을 거치면서 무엇인가를 배울수록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듯이, 살아온 날들이 많아질수록 내가 겪은 것들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돈과 시간을 많이 썼고 하나의 분야에 집요하게 빠져봤기에 나의 세계관 일부가 생겨났다.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가끔 학위를 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않냐고 하는 말들을 듣는다. 학위를 하느라 놓친 것들을 생각해보면, 나에게 대학원을 진학하는 선택지보다 더 나은 선택지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학위 이외에도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내게 많은 것들을 주었기 때문이다. (조금의 예를 들어보자면, 여러 번 계속해서 실패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법이나, 정확히 내가 목표하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법 등의 것들이다.)
20대를 온전히 다 보내고 나서 나는, 세상은 불공평하기도 하지만, 공평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각자 얻어가는 것들이 다르다는 점에서 세상은 불공평하기도 하지만, 각자가 얻어가는 것들이 본인의 마음가짐이나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세상은 참 공평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대학원 과정을 지나왔고, 그 시간들을 거치면서 나의 생각의 한 부분을 완성하였다.
많은 경험과 시도는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주는 비옥한 토양이다.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무언가를 경험하지 않고 본인만의 관점을 얻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종종 욕심을 부린다.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 간접적인 경험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나는 간접 경험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래도 일부의 직접적인 경험들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생명과학 분야의 전공을 갖고, 석사 학위를 받는 일이 그러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생명과학을 전공으로 대학원 학위를 받은 선배들이 너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거나, 그렇게 해도 네가 만족할만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데! 어차피 안 될 거,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
사실은 나도, 서른이 된 지금은 확실하게 '내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정말 하. 나. 도.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20대의 시기를 보내는 동안엔 참 불안했다. 하나의 경험을 하려 할 때마다 이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나의 선택이 정말 맞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고민을 거듭하여 선택했지만 실패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많았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과 고민들로 수많은 밤을 지새우는 분들이 지금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런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하길 원하는 그 모든 경험들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간에 분명히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틀린 선택은 없다고. 지금은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시도들일지라도, 언젠가 '이러저러한 수많은 시도들을 했기 때문에 지금에 내가 있다.'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이라고. 다소 방향성이 없어 보이는 발자취들이 모여서 나중에는 이 세상 하나뿐인 나만의 길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서른이 되고 보니, 이제 조금은, 힘을 빼고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들을 욕망하지 않고, 그저 나로 살아가도 괜찮구나, 하는 용기와 모든 것들을 잘해야만 나의 쓸모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나이.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대학원 때의 시간들이 내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지만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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