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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이의 책읽기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는 것들에 대하여

 

 

 

 

 

글 · 사진 | 세발이, sebari

 

 

 

최근까지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나의 주변을 내게 꼭 필요한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는 삶. 사부작거리기를 좋아하고 잡다하게 무엇인가를 모으는 행위를 좋아하는 나도 언젠가 유행을 따라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돈을 쓰는 일이든 시간을 쓰는 일이든 간에, 내게 꼭 필요한 것들로만 나를 채울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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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필요와 쓸모 따위는 제쳐두고, 그저 내 눈에 아름답고 흐뭇하다는 이유만으로 쇼핑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미니멀리스트란 좋다는 걸 두루두루 써본 다음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딱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다. 돈도 있어야 하고 여유도 있어야 한다.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 미니멀라이프라는 게 다이소 꿀템만 착착 골라 구비해놓는 인생은 아니니까.

-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원래도 돈을 쓰는 일에 인색했던 나는, 대학원생 시절을 거치면서 어딘가에 나의 돈을 사용하는 일에 조금 더 인색해졌다. 대학원 시절, 인건비로 받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아서 실험실 출근을 하고 밥만 챙겨먹어도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 무렵부터는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조금이라도 쓸데 없는 일에 나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에도 엄격해졌다. 모든 것이 '학위를 받는데 내게 필요한 일 vs 필요하지 않은 일'로 나누어졌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날들이 이어졌고 휴식을 취하고 잠깐 정신을 환기 시키는 것이 목표로 한 일을 이루는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이라고 하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실 미니멀리스트란 좋다는 걸 두루두루 써본 다음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딱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말이 비단 돈을 쓰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전공 분야를 정하거나, 직업을 구하는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며 시간을 써본 다음에야 내가 진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현재는 쓸데없는 일처럼 보이는 일이더라도.

 

 

화장품이든 음식이든 옷이든 공연이든 여행이든 무엇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안다면, 뭘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지 안다면, 과거의 내가 그만큼 돈을 쓰고 똥도 밟으면서 어렵사리 알아낸 덕분이다.
좋은 물건을 만나려면 그저 열심히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열고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게 최고다. 세상 오만 것에 두루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참견도 하고 비교도 하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팍팍 써야 좋은 것을 고를 확률이 높아진다.

-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업을 가지려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 없이, 효율적으로 커리어를 쌓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세상 오만 것에 두루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참견도 하고 비교도 해야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게 된다는 이 책의 말처럼, 세상 오만 일에 두루 관심을 갖고 직접 겪어보고 자잘하게 좌절도 몇 번 해보고, 번뇌의 시간들을 가지고 난 후에야 내게 꼭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다. 하나의 좋은 물건을 찾는데도 이렇게 나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하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내가 하루 중 대다수의 시간을 사용하게 될 직업은?! 지금 내가 특정 경험에 시간을 사용한 것이, 낭비가 아니라 투자일 수도 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국내도서
저자 : 신예희
출판 : 드렁큰에디터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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