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 세발이, sebari
설레는 실험실 출근 첫날.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서 실험실로 향한다. 왠지 이제부터 나는 엄청난 일들을 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런 설렘도 잠시, 여러분들 중 일부는 아마 '여기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실험실마다 신입생에 대한 태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몇몇의 경우에 신입생들은 실험실에서 '(짧거나 긴 시간 동안) 방치'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실험실 선배들이 나에게 무관심해서라기 보다는 선배라고 하는 사람들도 (시기적으로만 살짝 앞섰을 뿐) 나와 같은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든다면, 오늘 나의 사수에게는 나를 케어해주는 일 이외에도 해야 할수많은 다른 일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맡은 여러 개의 프로젝트와 다시 그 아래의 실험들, 읽어야만 하는 논문들, 교수님이 시키신 심부름들, 오늘 당장 처리해야만 하는 행정업무들, 받아야만 하는 많은 교육들, 실험실에서 맡은 랩잡 등.. 이래도 서운하다면 그 사수의 모습에 본인을 대입해보자, 짧게는 6개월만 지나더라도 그 선배와 같은 모습으로 새로 들어온 신입생을 케어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럼 나의 사수가 이러한 본인의 일들을 할 때 나는? 많은 경우에 본인에게 주어진 자리에만 앉아서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논문들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심지어 첫날부터 구석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는 친구도 목격했다. (핫!?) 어색한 기분에 가만히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대신, 이런 일들을 해보면 어떨까? 앞으로의 대학원 생활과 실험실 생활에도 도움이 되면서 사수가 본인의 할 일을 끝내고 나에게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한 일들을 적어보았다.
실험실 사수를 만나면?
오늘 첫 출근을 한 신입생이 실험실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말해보기 전에 첫날 실험실 사수를 만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먼저 말하면 좋을 것 같다. 학과마다, 실험실마다 조금은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겪은 세 곳의 실험실들은 크게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01) 인사, 통성명, 자기소개
실험실 생활 (=대학원 생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따라서 서로 인사와 자기소개를 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사수뿐만 아니라 실험실의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자. (실험실원들은 신입생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도는 미리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에게 직접 소개를 듣는 것과 교수님으로부터 전해 듣는 것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른 것 같다. 통성명도 안 했는데 나중에 먼저 이름을 부르면서 아는 척하는 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고.. 직접 대면하고 대화를 나누면 실험실 생활 초반에 잘 몰라서 삽질하고 있을 때 도움을 받기도 좋다.)
02) 앞으로 같이 하게될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에 대한 설명...) 듣기
사수와 부사수, 둘 중 한 명이 엄청나게 말주변이 좋은 게 아니라면 곧 앞으로 하게 될 연구에 대한 설명으로 주제가 넘어가게 될 것이다.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둘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이니까 :>) 사수의 스타일에 따라서 PPT로 정리된 것을 보여주며 설명할 수도 있고 (대부분 이렇게 하는 것 같다), 말로만 설명을 할 수도 있고, 프로젝트와 관련된 논문들 중 읽어볼 만한 논문들을 추려서 보여주며 설명할 수도 있다. 아마 설명할 때 사용한 자료들은 사수에게 부탁하면 받을 수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때 본인의 노트를 가져와서 직접 적으면서 설명을 듣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만 꼽자면, 설명의 속도가 조절이 되기 때문이다. 신입생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이 연구실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지를 대충 알고 왔다고 하더라도 프로젝트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영혼이 안드로메다로 가출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모르는 용어들, 모르는 개념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일단 프로젝트에 대한 개념이 아직 머릿속에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명해주는 사수의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인트로덕션에 매일 같이 들어가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설명을 하다 보면 속도가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다. (설명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 이거 너무 당연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너무 쉬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근데 듣는 사람이 적지 않고 멍하니 듣고만 있다면? 당연히 이 내용들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간략하고 빠르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게 된다. (안돼애애애애-) 또 다른 식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아무래도 적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알려주는 사람의 앞에서 메모를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내가 글자를 다 적을 때까지 설명을 잠깐잠깐씩 멈추게 된다. 그리고 이때 적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왔을 때 질문을 바로바로 하기에도 수월한 것 같다. (열심히 설명을 와다다 하고 있는데 중간에 "잠시만요..! 질문이..." 하는 것보다 질문을 하는데 부담이 적은 느낌이다.)
03) 자리 배정, 실험 테이블 배정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나면 앉을 자리와 실험 테이블을 배정해준다. (자리 배정을 먼저 할 수도 있고, 순서는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실험 테이블을 따로 배정받는 실험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실험실에서는 부사수가 사수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는 같은 실험 테이블을 쓰기도 한다.
04) 그 외의 이야기들
사수가 그 날 실험적으로 바쁘지 않다면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나왔는지, 왜 우리 실험실에 오게 되었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집은 어디인지 등등.. 이런 이야기들은 다른 곳에서 나오는 대화와 유사하므로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실험실 첫 날, 사수와 만나면서 생기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아마 이런 일들이 첫 출근 후 약 1시간 동안 일어날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는 사수가 하는 실험들을 옆에서 보게 될 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에는 신입생들에게 첫 번째 방치의 시간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실험실에서 본인에게 여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해보려고 한다. (는 너무 길어질까봐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다음 글 >> https://sebari.tistory.com/13?category=854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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