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 세발이, sebari
"내일 xx 실험할 거니까 미리 프로토콜 읽고 공부해 와."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며 자주 들었던 말이다. 비단 나뿐일까.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실험실에 있는 누군가는 이러한 말을 들었거나 앞으로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거슬러 6년 전, 새내기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사실 '프로토콜'이라고 하는 단어의 뜻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대충 '이 종이를 주면서 읽어오라고 했으니 종이에 써진 이런 글을 '프로토콜(?)'이라고 부르나 보다.'라는 추측을 하는 정도. 1번부터 차례대로 순서가 매겨져 있고 그 아래 영어로 각각의 스텝이 적혀 있는 글귀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그냥 순서가 적힌 종이인 것 같은데 도대체 뭘 공부 해오라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순서를 외워오라는 말일까? 이 글을 해석해오라는 소리인가? 스스로 여러 질문들을 던지며 프로토콜을 숙지하고, 사용되는 머터리얼들과 실험 기구들에 대한 공부를 했다.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실험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가 생각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공부하는 일'의 최선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실험을 계속 해오던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프로토콜(protocol)이지만 처음 실험을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프로토콜을 읽어내는 일'조차 막막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막막함은 프로토콜이 내용적으로 길지 않고 간결한 내용이기 때문에 더 커진다. (일반적으로 프로토콜은 꼭 필요한 정보만을 남겨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뒤에 숨은 많은 정보들에 대하여 우리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어떻게 프로토콜에 나와 있는 내용 이상의 것들을 배울 수 있을까? 오늘은 프로토콜을 읽고 공부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01. 실험의 목적을 이해하기
우리가 프로토콜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세한 이유들이야 모두 다를 수 있겠지만 대략적인 컨셉만을 이야기해보자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하는 일이 필요하고,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실험적인 디렉션 (=프로토콜)이 필요하기 때문에. 즉, 프로토콜이 필요한 일차적인 이유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이지만 그보다 더 원론적인 목적은 나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의 연구를 끌고 가기 위해서는 프로토콜을 읽을 때도 계속해서 내가 하게 될 실험의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더 나아가서 이 실험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실험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치는 본인이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기 위하여 꼭 개발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토콜을 읽기 전, 실험의 목적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다음의 간단한 예시를 읽어보자. A와 B가 Transformation이라고 하는 똑같은 실험을 한다. 하지만 둘은 서로 다른 실험 목적을 가지고 있다. A의 실험 목적은 DNA를 증폭시키는 것이고, B는 단백질을 증폭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같은 실험이지만 실험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프로토콜의 세부적인 내용(=실험에서 사용하는 competent cell의 종류)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A가 아무런 생각 없이 B가 실험하는 프로토콜을 받아 그대로 실험했더라면?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다시 같은 실험을 반복해야 됐을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이 이런 단순한 실험의 목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이런 예시를 들어보았다.
02. 각 스텝의 목적에 대하여 공부하기
실험 전체의 목적에 대하여 이해했다면 이제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자. 바로 1번부터 순서대로 적혀 있는 각 스텝들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말한 것처럼, 전체적인 실험의 목적이 있듯이 각각의 세부적인 단계들에도 목적이 있다. (실험실 선배림들이 말씀하시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손동작 하나를 요로케 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subculture를 예로 들어보자. 첫 번째 스텝의 목적은 growth media를 없애는 것이다. 그냥 remove만 시켜도 안되고 1xDPBS로 반복해서 wash 하라고 되어있다. (세포 표면에 남아있는 growth media도 최대한 없애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 trypsin의 작용을 방해하는 2가 양이온들 (Ca2+이나 Mg2+, growth media에 포함되어 있다.)을 제거해주기 위해서! 이걸로도 모자라 두 번째 스텝에서는 trypsin과 함께 EDTA (2가 양이온을 잡는 킬레이트 시약)가 포함된 시약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스텝의 목적은 플레이트에 붙어있는 세포를 떼내는 것이고, 세 번째 스텝의 목적은 trypsin이 너무 과하게 작용하여 세포에 데미지를 주지 않도록 inactivation 시키는 것이다. 이만하면 예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03. 각 스텝의 목적이 어떻게 달성되는지 알아보기
앗! 바로 위에서 다 설명해버렸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는 하나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각각의 스텝의 목적을 알아보고 그 목적이 어떻게 달성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설명해보자면 subculture 프로토콜에서 두 번째 스텝의 목적은 플레이트에 붙어서 자라는 세포를 최소한의 데미지로 떼어내는 것이 목적이고 tryptinization 과정을 일정 시간 (여기에서는 5분) 동안, 일정 온도 (37 ºC)에서 함으로써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 왜 하필 5분일까? 그리고 왜 37 ºC 일까? (매우 좋은 호기심이다!) 이렇게 왜라는 의문이 생긴다면 그때마다 관련된 근거에 대해서 찾아보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자. 이런 과정을 통해서 프로토콜을 조금 더 깊이 있고 정확하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04.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공부하기
내가 생각하는 프로토콜을 읽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본인이 앞으로 할 실험을 정확하게 알고 미리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터리얼과 실험 장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여서 실제로 실험을 하기 전에 이 실험이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실험 전 준비되어 있어야 할 머터리얼들은 무엇인지, 어떤 실험기기들이 필요할 것인지, 실험이 이론적으로 결함은 없는지, 나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여지가 있는 부분은 어느 부분인지, 실험을 하는 중 돌발상황이 발생하였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각 스텝마다 동선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이 실험실에서 가능한 실험인지 등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을 해보는 것까지가 프로토콜을 읽으며 공부하는 시점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 프로토콜을 읽는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되는 것을 목표로 처음부터 트레이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내용들 뿐만 아니라 내가 실험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 알아야 할 것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찾아서 공부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들은 실험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판단 아래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토콜을 읽는 일이 어떻게 보면 참 간단하게 보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토콜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한참을 같은 실험을 하면서 헤맬 수도 있고, 한 번에 정확한 실험을 하여 나의 시간과 실험재료들을 아끼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프로토콜을 읽는 일이 실험을 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고 꼼꼼하게 프로토콜을 읽고 실험을 준비해서 원하는 모든 결과들을 한방에! (크으, 그렇게만 되면 진짜 대박이다.) 얻으시기를! 뿅! :>
영상으로 이 내용을 보고 싶은 분들은 요기로 ↓
https://www.youtube.com/watch?v=i4YZXHt-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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