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 세발이, sebari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무슨 공부를 하면 좋을까요?", "연구실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실험 공부를 하면 좋을까요?", "대학원 가서 영어 논문 읽어야 하는데 그전에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종종 받는다. 6년 전, 나도 같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고민했을 때, 먼저 대학원 생활을 하던 선배들은 나에게 이런 말들을 했었다. "일단 놀아", "푹 쉬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돈이 없다면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다니고 많은 경험을 해봐", 그리고 "학기 시작해서부터 실험을 배워도 늦지 않으니 최대한 연구실은 늦게 들어와."
사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하루라도 더 일찍 실험실에 출근해 실험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다. 남들은 학부생일 때도 인턴 연구원으로 들어와서 실험을 배운다고 하는데 나보고 학기가 시작한 뒤에 실험을 배우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만 점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교수님께 다음 주부터 당장 출근해도 되겠냐고 물었고 (왜 그랬니.. 과거의 나... 주륵ㅠㅠ) 그렇게 나의 대학원, 실험실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한 나도, 이제는 내가 들었던, 나의 선배가 나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내뱉는다. "대학원에 오기도 전부터 실험 공부를 할 필요는 없으니 푹 쉬고, 할 수 있다면 여행을 하고, 취미활동도 즐기고, 운동을 하고,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마음껏 하다가 가능한 최대한 늦게 대학원 연구실에 출근을 하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과거의 나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의문을 가질 여러분들에게 :>) 오늘은 대학원 입학 전 하기를 권장하는 일들과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01. 다양한 경험들을 하기 (여행, 취미활동, 휴식 등)
대학원 생활은 뭐랄까. 아주, 아--주 긴 여정이다. 학위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이 체감하기에 끝나지 않는 기간이라고 느껴질 만큼. (나도 졸업논문을 제출하기 전 날까지, 이 시간들이 과연 끝나긴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학원에 오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이 스스로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목적의식 없이 대학원을 가면 주기적으로 자꾸 방황을 하게 되더라. 내 경험담인 건 비밀.)
그럼 대학원을 선택한 것에 대한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여러 경험들이 쌓여야 하고, 그것에서부터 우러난 스스로의 생각들이 쌓여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긍정적인 경험들이 쌓여서 확신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경험을 회피하고 싶다는 목적성으로부터 이 길에 대한 확신을 찾을 수도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 이거구나!' 싶을 수도 있고. 아무튼, 본인에게 있어서 힘들 때 '그래, 좀 더 해보자!' 하는 마음을 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으면 된다.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는 '고작 그런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겐 엄청 의미 있는 그 무언가! 때로는 이성적으로 맞는 여러 개의 이유보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한 가지의 이유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
또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이러한 활동들을 마음껏 다 해보라고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이미 질리도록 해본 것들에 대해서는 욕구(?!)가 덜 생기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해볼걸'이라고 하는 후회도 조금 덜하다고 생각한다.) 좀이 쑤시도록 푹 잘 쉬다 보면 '차라리 실험실 나가서 일하는 게 낫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02. 운동을 하기
또 하나 더 필수적인 것, 운동이다! 아마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면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 같다. 실험을 하더라도, 공부를 하더라도, 발표 준비를 하더라도, 뭘 하더라도! 체력이 너무 중요하다. 특히 출장이 많은 실험실일수록, 연차가 쌓여갈수록. 실험을 하다보면 새벽까지 실험이 이어지기도 하고, 학기 중에 여러 수업들을 들으며 세미나 준비를 하다보면 밤을 새우는 날도 자주 존재한다. (물론 방학 중이라고 밤을 새울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님 ^^.) 아무리 성과가 잘 나오더라도 그것을 결국 마무리 짓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답게 생명끈을 잘라 가방끈을 늘린다는 말은 슬프지만 농담이 아니다. 흑흑)
물론 대학원 생활을 시작과 동시에 운동도 시작해서 그것을 꾸준히 지속시키는 능력자들도 몇몇 보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경우 너무 바빠서 (대학원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운동을 포기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시간이 있을 때,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여두고, 건강을 챙겨두는 것을 권장한다. (나는 실패함....^^;)
03.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기 (feat. 독서)
결국 대학원 생활의 시작과 끝은, 나의 연구 분야를 정하고 그것에 대하여 연구한 뒤 나의 주장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실험 데이터들과 함께 여러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전하는 일이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대학원 과정 동안 많은 레퍼런스 논문들을 읽고, 이미 알려진 부분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는 것 등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래서 대학원에서 필요로 하는 이런 논리적 사고방식이 이미 내재되어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수월하게 대학원 생활 동안 주어지는 퀘스트들을 해결할 수가 있다. 나에게는 아직 없는 능력이라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기! 다행스럽게도 이런 논리적 사고방식, 논리적으로 나의 생각들을 확장시키는 능력은 독서를 통해 학습이 가능하다.
아마 대학원에 진학하면, 다른 사람이 쓴 논문들을 읽고 정리해서 발표하는 일이나, 레퍼런스 논문들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하여 본인의 논리를 발전시키는 일들을 계속해서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일들은 주제만 다를 뿐, 어떤 하나의 책을 읽고 그것을 읽으면서 본인이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는 일과 일맥상 통하는 일이다. (그래서 독서를 하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을 통해 이런 능력들을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주제에 상관없이 여러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 읽고 그것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 그리고 본인의 논리를 만드는 연습을 하면 대학원 생활에서 필요한 논리적 사고방식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 여기까지는 공부 외의 것들에 대해서 다루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본격적으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것들과 본인이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활동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다고 생각을 한다. 그. 래. 도!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꼭! 이론적인 부분이나 논문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조금의 내용들을 더 적어보았다. (그래도 시간을 써서 공부를 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 게 나을 테니까 ^^)
04. 실험 프로토콜을 공부하는 대신 원리와 이론에 대해 공부하기
의외로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 실험 스텝 (=프로토콜)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에게 실험 공부를 하고 싶은데 보고 따라 할 실험책을 소개해달라고 하거나, 실험을 미리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달라고 한 분들이 계셨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진짜로!) 이 글에서도 여러분들께 못 박아 말해드리고 싶다. 실험 공부, 실험방법 등에 관한 것들은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 공부를 할 필요가 전. 혀. 없다!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자면. 첫째. 같은 실험이라고 하더라도 실험실마다 사용하는 프로토콜의 세부 내용들이 다르다. (=실험실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프로토콜이 존재한다.) 둘째. 실험에 대한 것을 글로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눈으로 보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예를 들어보자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글로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효율성 측면에서 미리 배우는 것에 비해 실험실에 들어가서 배우는 게 훨씬 낫다는 말이다.) 셋째. 혼자 공부할 때 실험에 대한 잘못된 컨셉이 자리 잡은 경우에 그것을 바꾸는 데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제발. 실험실 가서 본인의 행동을 교정해줄 만한 사수가 있을 때 그 앞에서 실험을 배우자.)
그리고 인턴으로 들어가서 실험 몇 번 해봤다고 실험실 와서 사수에게 "제가 배울 땐 안 그랬는데요? 원래 이렇게 안 하던데요? 왜 여기서만 이렇게 해요?" 이런 말 할 바에는 차라리 머릿속이 도화지같이 하얀 후배님이 훨. 씬. 사랑스럽고 예뻐 보인다 ㅠㅠ.. (대체 해봤으면 얼마나 해봤다고 그러는 건지. 이럴 거면 제발 혼자 실험해ㅠㅠ.) 진심으로 당부드리건대, 실험 배울 때 이런 예의 없는 발언은 삼가도록 하자.
그럼 프로토콜을 공부하는 것 말고, 실험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 말고,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 내가 권장하는 방법은 이론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다. 생물학을 전공할 계획에 있는 사람들은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생화학 공부를 하면 좋다. 사실 실험이라고 하는 게 모두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험의 스텝 스텝을 알고 있는 것보다 그 바탕에 어떤 이론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전공생이라고 하더라도 분생, 세생, 생화학 다 꿰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세 과목만 빠삭하게 공부해온다고 해도 여러분은 상위권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론 공부 열심히 해온 친구들이 제일 이해도 높고 잘 따라온다는 게 학계의 정설 ㅇ.< !
+)
그리고 학부생 때 실험 수업 못 들어보았다고 걱정하시는 분들, 인턴 한 번도 안 해봐서 걱정이신 분들. 걱정 마세요. 해본 사람이나 안 해본 사람이나 별 차이 없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한 번 배워봤다고 잘난척하다가 망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으니까. (진짜임.) 걱정 말고 실험실 들어와서 차근차근 배워나가시면 됩니다 :> ! 실험은 실험일 뿐, 그 바탕에는 이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디 실험에 포커싱 하지 마시고 생물학적인 전반적인 지식, 그리고 그 컨셉에 대한 이해에 집중하시길!!
05. 영어공부
영어공부에 관한 고민도 많이들 하는 것 같다. 대학원에 들어가면 영어로 된 논문을 많이 읽고, 심지어 직접 쓰기도 해야 한다는데 영어를 못해서 어쩌나, 고민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이것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했다. 고로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 ^^!) 그리고 미리 영어공부를 좀 해두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분들께는 토익 (혹은 토플, 혹은 또 다른 무언가) 대신, 논문을 읽는 방법을 추천드리고 싶다.
학부생의 입장에서는 영어공부라고 하면 토익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하지만 토익은 정말 영어를 위한 영어공부라서 개인적인 생각에 대학원 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본인이 가게 될 실험실에서 나온 논문들 중 몇 개를 뽑아서 그 논문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를 추천드린다.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필드에서 사용하는 여러 용어를 접하고 익숙하게 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추가로 이론적인 내용 부분이나 대략적인 실험의 컨셉을 덤으로 알 수도 있다.) 모르는 단어들은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을 해가면서 하나하나 정독해서 읽어보자. 분명히 실험실에 들어가서 생활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
오늘은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실험실 생활을 하기 전, 어떤 일들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질문이 많이 들어와서 이런 글을 기획해보았다. 사실 대학원생도 별 거 없다. 같은 사람이다.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면 후배인 여러분들도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의 개고생만 필요할 뿐.. ^^;) 그러니 미리부터 지레 겁먹지 말고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보시길! 여러분들의 대학원 생활이 반짝반짝 빛나길 바라며! 뿅!
이 내용을 영상으로 보고 싶은 분들은, 요기로 ↓
https://youtu.be/dXoU2ZESi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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